◎ No, 14
◎ 이름:한화룡 (hwahan@hananet.net)
3대 과제를 알면 통일이 보인다  

2000년 6월 13-15일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지도 어느덧 만이년이 되어간다. 분단 55년만에 최초로 이루어진 만남으로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과 기대가 어느 때보다도 높았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그후 진행된 남북관계는 몇 번에 걸친 이산가족상봉과 예술단 교류 등 이벤트성 행사가 고작이었다.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이산가족 간의 전면적인 생사확인과 서신교류는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군사적 긴장완화나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것은 전혀 논의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지불식 간에 북한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고 통일의 전망은 다시 오리무중에 빠진 것같은 느낌이다. 북한은 정말 변화하고 있는가? 통일은 정녕 이루어질 것인가?

북한의 내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통일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1990년대 들어와 극심해진 식량난으로 현재 북한동포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절망의 깊은 바다에 빠져 침몰하고 있다.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은 1994년 7월 사망했다.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 살게 해주겠다는 아직도 실현되지 못한 약속을 뒤에 남기고.... 설상가상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수백만명이 비참하게 굶어죽었다. 또 그 아수라장 가운데서 북한동포들은 극심한 고통과 참상들을 경험하고 목도했다. 부정과 불의, 사기와 협잡, 폭력과 강간, 살인과 식인 등등.... 게다가 1990년대 후반 이래 지속된 외부 원조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제난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과 맞물려 북한 정권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과거에 북한 주민들은 한 편으로 지도자와 당에 대한 충성과 신뢰 때문에, 다른 한 편으로 극심한 통제와 감시 때문에 정권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거나 비판하는 일이 비교적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가까운 친구나 동료, 친척들에게 김정일과 북한 체제, 특히 경제 체제에 대한 비판을 공공연하게 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정일은 작금의 난국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 지도부는 북한이 김일성의 탁월한 영도 아래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건설한 반면에 남한은 미제의 압제 아래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지옥으로 선전해 왔다. 따라서 북한 지도부는 북한의 허구와 모순을 만천하에 드러낼 개방과 개혁을 섣불리 단행할 수 없는 딜렘마에 빠져 있다. 김정일의 애첩이었던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이 지적한 것처럼 "서울의 백화점 코너 하나만 보여줘도.... 그걸 보는 순간 북한 주민들의 눈이 뒤집힐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김정일 정권은 그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자들에 대한 가혹한 처벌과 가족연좌제를 근간으로 하는 무력통치로 북한 주민들을 강력하게 억압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난과 폭정, 그로 말미암아 민심이 이반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통일이 조만간에 현안으로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는 점진적, 평화적 통일을 추구해 나가면서 동시에 갑작스럽게 닥칠 통일을 대비해야 한다. 필자는 통일로 가는 길목에 서있는 한국교회가 추구해야 할 세 가지 과제 - 북한 복음화, 남북화해, 북한사회 재건 - 가 있다고 판단하고, 이 글에서 세 과제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 및 기본원리를 제시하고자 한다.

과제 1. 북한 복음화
1988년 평양에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이 문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는 여전히 종교와 선교의 자유가 없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식량난을 못이겨 중국으로 나왔다가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을 색출해 공개처형하거나 기독교인들의 도움을 받은 자들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이 북한의 실상이다. 북한은 본질적으로 유물론과 진화론에 바탕을 둔 무신론적 공산주의 사회이다. 주체사상 역시 기본적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물론적 사상이자 인간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인본주의 사상이다.

게다가 북한은 단순한 공산주의 독재국가가 아니다. 해방후 1970년대까지 나름대로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정치적 이상과 신념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1930-40년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경력, 해방후 북한에서 실시한 토지개혁과 일련의 민주화 조치, 6.25 전쟁 이후 초토화된 북한 경제의 재건 등 김일성이 이룩한 치적으로 북한 주민들은 그들의 지도자와 체제에 대해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김정일이 정치 권력의 전면에 나선 이래 북한은 세습왕조 국가로 변질해 김부자에게 맹종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거대한 수용소군도가 되었다.

또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때 북한 주민들이 나타낸 반응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북한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사이비 종교 집단과도 같다. 북한 지도부는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김일성 령수는 만백성의 하늘님," "김일성 수령은 조선의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면서 김일성을 신격화하기 시작했다. 한 탈북자의 고백은 북한 사회의 종교적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지전능한 우리의 아버지 김일성 수령 동지/ 이 땅에서 일제의 앞잡이들을 모두 물리쳐 주시고/ 흡혈귀같은 미제놈들을 쫓아내신 영원한 영웅/ 우리에게 매일 양식과 입을 것/ 살 곳을 마련해 주신 어버이 수령/ 그는 나의 신이었다." 북한은 김일성 수령을 교주로 하는 수령교 국가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정일이 김일성 사후 그가 생전에 집무하던 금수산 의사당에 북한의 식량부족분 3년치를 구입할 수 있는 거금 8억 9천만 달러를 들여서 거대한 기념궁전을 만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현재 북한 전역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구호를 담은 영생탑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김일성의 업적과 카리스마를 활용해 주민들을 다스리려는 북한 지도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악화일로를 걷는 생활조건 때문에 현재 북한 주민들은 절망의 깊은 수렁에 빠져 헤매고 있다. 따라서 통일을 앞둔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사망의 그늘에 앉아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제일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 복음만이 북한 주민들을 구원하며 복음만이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복음만이 그들에게 희망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물론적 사상 교육을 받은 북한 주민들에게 하나님의 존재와 위대한 능력을 변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 북한에 태어난 이유 하나만으로 혹독한 시련과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변증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또 북한 주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도하려면 그들의 출신성분과 직업, 연령과 성 및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인 생활수준과 의식수준을 충분히 고려해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 주민들은 출신성분에 따라 핵심계층(항일혁명투사와 그 가족, 전사자, 피살자 가족, 당, 정, 군간부 및 그 가족 등으로 30 퍼센트), 기본계층(당원이 아닌 일반노동자, 농민, 사무원 및 그 가족 등으로 50 퍼센트), 복잡계층(과거 지주와 자본가 가족, 친미주의자, 종교인 가족 등으로 20 퍼센트)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같은 계층성을 십분고려해서 각집단의 상황과 필요에 적절한 복음화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현재 북한 체제를 수호하면서 일반 주민들을 혹사시키고 있는 북한 노동당 간부들과 안전부, 보위부원들에게는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또 헐벗고 굶주려 비참하게 죽어가면서도 김정일 장군의 노래를 부르며 구걸하는 꽃제비 소년들에게는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생지옥같은 정치범 수용소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초를 겪으면서 해방의 그날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북한 체제의 이탈자들에게는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또 북한은 지역에 따라 문화와 경제가 다양한 특성을 띠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지역성을 십분고려해서 각 지역의 상황과 필요에 적절한 선교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평양은 북한 체제를 지지하고 충성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서 생활 수준이 높고 외부 사정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함경북도 청진과 경성 및 강원도 원산은 일본에서 귀국한 북송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조총련계 조국 방문단이 자주 찾아오는 관계로 일본 문화가 많이 유입되어 의식수준이 높은 곳이다. 평안북도 신의주, 양강도 혜산, 함경북도 무산, 회령, 온성은 중국과 인접해 있는 까닭에 외부의 유행이나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중국과의 교역으로 내륙 지방 사람들보다 비교적 생활 수준이 높은 곳이다. 양강도는 산이 깊고 살기 어려운 지역으로 주민수는 많지 않지만 북한 체제에 대한 반발심이 강한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기는 지나치고 그대로 놔두자니 다른 주민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것 같은 사람들을 골라 추방시킨 곳이 양강도다.

과제 2. 남북 화해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은 전격적으로 남침하여 민족사에 돌이킬 수 없는 참화를 일으켰다. 6.25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아까운 생명을 잃고, 한반도의 영토적 분단은 오히려 고착되었다. 게다가 단일민족의 마음속까지 남북으로 갈라서고 말았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미제가 남조선괴뢰도당을 사주하여 북침했으며 지금도 호시탐탐 북침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게다가 6.25 전쟁에서 북한 주민들은 미공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남한을 능가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거짓말과 선전에 속은 북한 주민들이 남한과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원한과 증오심이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원한과 적개심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뿌리깊고 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울러 한국전쟁의 원인과 책임 소재와 관련하여 명확하게 시시비비를 가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통일을 앞둔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과거의 피해와 원한에 집착하기보다는 남북간에 더 이상 6.25 전쟁과 같은 비극이 재현되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폭력은 파괴를 결과하고 증오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야 한다. 한국교회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폭력이 아니라 사랑을, 증오가 아니라 용서를 심는 화해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화해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화해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화해를 추구하기에 앞서 남북간의 불화와 그 원인에 대한 객관적인 진상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일방적인 피해의식과 왜곡된 선입견 그리고 정보 통제로 남과 북은 서로 오해와 불신이 매우 많다. 해방후 지주와 소작인의 갈등, 좌우익간의 극심한 대립과 상호보복, 북측이 도발한 6.25 전쟁, 그러나 남측을 능가하는 피해를 입었던 북한, 인민군과 지방 빨갱이들의 만행과 학살, 그리고 그 와중에서 미군과 국군 및 치안대가 과도하게 행사한 폭력, 1953년 휴전 이후 무장공비 침투, 아웅산 묘소 테러, 칼기 공중폭파로 이어진 북한의 대남테러와 그에 맞대응하여 적어도 1970년대까지 북파된 남한 공작원의 실상 등 남북 간에 왜곡되고 은폐되거나 누락된 역사가 있는 그대로 밝혀져야 한다. 진실 규명 없이 진정한 화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북한 권력자들에 대한 화해
남북간의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북한의 변화에 대해 낙관하는 남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남한측에서 호의를 갖고 북측을 지원하면 언젠가는 북한 지도부가 남북화해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 지도부가 그동안 북한 주민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비행들을 저질러 왔음을 유념해야 한다. 체제 이탈자와 반대자들에 대한 가혹한 처벌과 공개처형, 정치범 수용소에서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 수십만명의 북한 주민들, 굶어죽은 수백만명의 북한 주민들의 절규과 원성 가운데서도 김부자의 독재와 우상화는 그칠 줄을 모르고 있다. 우리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남북고위 책임자들의 화려한 접촉 이면에서 북한 주민들에 대한 통제는 강화되고 고통은 가중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북한 지도부를 상대로 화해를 모색한다는 것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화해는 정의를 초월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불의와 타협하거나 부정을 용납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 주민들에 대한 화해
북한의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북한 지도부에 대해 민심이 크게 이반했다. 또 당간부, 보위부원, 안전부원들과 일반 주민들 간에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북한 지도부는 폭력과 처벌을 일삼아 정권을 유지하는데 급급하고, 당간부들은 힘없는 일반 주민들을 착취하여 연명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따라서 자칫 잘못하면 통일로 가는 과도기의 특수한 상황에서 이같은 원한과 울분이 과격한 방법으로 폭발할 우려가 있다. 특히 북한 군부간의 내전이나 보위부원들과 안전부원들에 대한 민간인들의 사적 보복과 테러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배경에서 화해는 남북간에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내의 다양한 집단과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서 교회의 사명과 역할은 무엇인가? 한국교회는 북한 주민들에게 복수가 아닌 용서, 증오가 아닌 사랑의 중재자와 모델이 되어야 한다.  

과제 3. 북한 사회 재건
김일성은 해방후 북한에 들어와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고 일련의 민주화 조치를 실시했다. 특히 1946년 3월 전격적으로 단행된 토지개혁 조치는 북한 농민들의 열렬한 지지와 환영을 받았다. 해방전 농민의 73 퍼센트가 자작농이나 소작농으로, 소득의 50-60 퍼센트를 소작료나 잡세로 지출하고 또 무보수 노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백만여호 농가 가운데 59 만호가 기아나 반기아 상태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토지를 주던 때처럼 날마다 행복하던 시절을 나는 어느 때에도 체험하지 못했다"는 어느 농민의 고백은 그 당시 많은 북한 주민들의 심정을 대변해 준다.

게다가 김일성은 전후 황폐해진 북한을 재건하여 나름대로 먹고살 만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다. 김일성은 1959년 12월 한 연설에서 "우리 생활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누구나 먹고 입고 쓰고 사는 데는 걱정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은 살아가는 데 별 불편이 없는 나라였다. 1980년대까지 북한 주민들이 외치던 "우리는 행복해요," "세상에 부럼 없어라"는 구호는 전혀 근거가 없는 허위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의 와중에서도 현재까지 하나의 사회로서 나름대로 결집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지도부에 의한 외부 정보 차단과 물리적 폭력만으로 오늘날 북한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 외에도 빈자와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주의적 가치와 명분이 북한 사회의 통합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심각한 경제난으로 파탄지경에 있으면서도 북한 지도부가 집요하게 사회주의와 관련된 정치 구호들 -- "우리식 사회주의," "사회주의 지키세" -- 을 내거는 이유를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 또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북한 주민들이 오늘날 북한이 처한 위기를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구조적 한계나 필연적 결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일시적 경제난이나 당간부들의 부패로 인한 사회적 현상으로 보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현재 북한 지도부는 극도의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매우 위축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남북화해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통일 이후 그들의 미래가 매우 불확실하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남한이 주도하는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북한의 고위층은 물론 기득권층 전체가 보복과 처벌 등 불이익을 당할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특히 토대 문화, 즉 출신성분에 따라 일생의 운명이 결정되는 북한식 문화에 익숙한 북한 사람들에게 남한이 주도하는 흡수통일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북한 주민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극도의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지배하고 퇴폐 저질 문화가 판치고 강도와 살인이 난무하는 비인간적 야만 사회라는 것이다. 따라서 남한이 주도하는 흡수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이 남한 지주와 자본가들의 노예로 전락하거나 이등국민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런 생각은 자본주의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지나친 염려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통일독일의 경험과 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에 온 조선족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공연한 기우로 여길 수만은 없지 않은가!  

따라서 남한 정부는 이제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통일한국에 대한 밝은 비전을 제시하는 적극적 자세로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통일후 남북간의 모든 문제를 화해, 즉 용서와 사랑의 차원에서 처리해 나갈 것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고 북한 주민 전체의 신분과 인권을 보장하는 정책과 지침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교육과 의료와 복지 모든 면에서 사회주의 제도의 명분과 실리를 능가하는 실제적인 대안과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통일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와 환상을 갖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북한 주민들이 새로운 상황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일에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해방후 공산주의와 6.25 전쟁을 피해 내려온 북한 출신 기독교인들의 기도와 헌신에 힘입어 오늘날의 대부흥과 성장을 이루었다. 한국사회는 1970-80년대 산업화의 성공으로 자가용 승용차가 없는 집이 드물고 핸드폰이 없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풍요와 자유를 구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통일한국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의 사명과 역할은 무엇일까? 세계 최악의 나라 북한이 무너져내리는 이 시기에 세계 최대의 교회를 남한에 세우신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공산주의 유혈혁명도 아니고, 자본주의 흡수통일도 아니고, 예수 십자가 사건을 통한 코이노니아(사귐과 나눔)가 아닐까! 계급투쟁과 독재가 판치는 공산당도 아니고,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이 횡행하는 자본당도 아니고,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교회당이 아닐까! 한국교회는 통일한국에 대한 긍정적 비전을 신학적으로 정립하고, 그에 따라 통일 과정에 불가불 수반되는 위험과 비용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도록 신자들을 계몽하고 교육해야 할 것이다.@


한화룡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와 미국 풀러신학교(Th.M.) 및 웨스트민스터신학교(D.Min.)에서 공부했으며, 현재 강변교회 교육목사와 천안대학교 기독신학대학원 선교학 전임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도시선교 (IVP, 1993) 와 4대 신화를 알면 북한이 보인다 (IVP, 200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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