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형 탈북자’들의 대량입국 시대가 열렸다

美 북한 인권법안 통과되면 탈북자 시장 더 확대될 듯…탈북 브로커가 최대 수혜자로 등장

김원두(43)씨는 직업을 묻는 기자에게 “국제적으로 활동하니 로비스트로 불러달라”고 농담처럼 답했다. 탈북자의 국내 입국을 주선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소위 말하는 ‘탈북 브로커’다. 탈북자들에게 일정 금액을 받고 중국 국경을 넘어 제3국으로 보내거나 여권을 위조해 공항을 통해 국내 입국을 돕는다. 그는 북한 주민 한사람을 함경남도 원산에서 중국을 거쳐 일주일만에 국내에 입국시킨 적이 있을 만큼 이 분야의 베테랑으로 꼽힌다. 김씨와 함께 중국에서 활동하는 그의 ‘라인’이 입국시킨 탈북자만도 70여명이 넘는다.

그는 중국 당국에 적발돼 최근까지 1년 3개월 동안 중국 감옥에 갇혀 있었다. 수감 기간 중 “깔깔해서 넘기기도 힘든” 옥수수떡만을 먹으며 지내다 지난해 12월 가까스로 풀려났다. 그는 요즘 태국으로 건너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곳에서 탈북자들을 모아 미국으로 보내는 일을 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탈북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특히 미국에서 북한 인권법안이 통과되면 미국으로 건너가려는 탈북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탈북자 관리의 주무 부처인 통일부의 탈북자 입국 전망은 ‘현장’에서 얻은 김씨의 경험적 예측과 다르지 않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7월 27일 “탈북 입국자가 5년 사이에 급증했다. 현재 5천명을 넘었는데 몇년 내에 1만명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말 베트남을 통해 4백68명의 탈북자가 대거 입국하면서 탈북자의 대량 입국 시대가 열렸다. 탈북자 수는 북한의 식량난이 극심해진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하게 늘기 시작해 2002년에는 1천명을 돌파했다. 관계 당국은 올해 탈북 입국자가 2천명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예전의 탈북자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해 북한을 벗어난 ‘생계형 탈북자’가 많았지만 지금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나서는 ‘웰빙형 탈북’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북·중 국경지대를 다녀온 경남대 북한대학원의 이우영 박사는 “중국의 야전군이 국경지대에 배치됐을 정도로 경비가 삼엄해졌다”고 전했다. 7월 말의 탈북자들 대량 입국 사건 이후 재중 탈북자들이 국내에 들어오기는 전보다 어려워졌다. 하지만 한국은 탈북자들이 여전히 가장 선호하는 국가이자 비교적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재중 탈북자들은 최소 10만명에서 최대 5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점차 늘고 있는 ‘웰빙형 탈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최근 들어 눈에 띄는 변화는 과거의 탈북이 신변 안전을 위해 한국이라는 도피처를 찾아오는 이른바 ‘푸시(push)형’이었다면, 이제는 국내에서 이들의 입국을 유도하는 ‘풀링(pulling)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탈북지원 단체들이 북한에서 잘 살고 있는 주민에게 탈북을 권유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풀링형’으로의 변화는 이른바 ‘탈북자 시장’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자들의 수요는 넘쳐난다. 재중 탈북자들은 점차 강화되는 중국 공안 당국의 단속을 피해 국내로 들어오길 원한다. 이미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빚을 내서라도 북한이나 중국의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고 싶어한다. 탈북 브로커들이나 탈북자 지원 단체는 이같은 수요를 충족시키는 ‘공급자’다. 이들 중 일부는 탈북자들로부터 선불이나 후불의 형태로 돈을 받고 국내 입국 작업을 하거나, 일부 선교단체들의 경우 이들을 대상으로 돈을 주고 기독교 신자로 끌어들이는 ‘선교장사’를 하기도 한다. 한 북한 관련 NGO는 “독재체제로부터의 대량 탈출 유도는 독재체제의 붕괴를 촉진시킨다”며 탈북을 유도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두리하나선교회의 천기원 전도사는 매일이다시피 재중 탈북자들로부터 ‘구원 요청’을 받는다. 그의 선교회는 대표적인 탈북 지원 선교단체로 그의 조직이 국내에 입국시킨 탈북자만도 4백70여명을 헤아린다. 그에게 도착한 한 메일에서 젊은 재중 탈북자는 “오늘 저녁에 공안국에서 내년 1월부터 옌볜(延邊) 거주민의 신분증을 모두 교체한다는 통지가 내려왔다. 중국 경찰들이 주민과 신분증을 일일이 대조하면서 탈북자를 색출하고 있다. 불안해서 빨리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다급한 내용을 타전하고 있었다.

탈북자들의 ‘기획 탈북’에 대한 논의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천씨다. 2001년 5백83명에 불과하던 탈북 입국자 수가 2002년부터 1천여명을 넘어선 데는 국내외 탈북 지원 단체들의 기획 탈북 탓이 컸다. 이는 NGO와 같은 탈북 지원 단체들이 조직적으로 탈북을 준비해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기획 탈북은 2001년 5월 중국 베이징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사무소에 진입해 한국으로 들어온 장길수 가족의 경우다.

천씨는 7월 말의 베트남 경유 탈북자 대량 입국을 물밑에서 준비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탈북자의 생명을 걸고 이슈화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언론에 노출시키는 기획 탈북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2003년 중국에서 북한으로 8천7백여명이 북송됐는데, 중국내 공관에 대거 진입하는 것을 전세계 언론에 노출시켜 북송을 하지 않도록 중국 정부에 압력을 넣는 것은 탈북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이같은 기획 탈북이 외교적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노출시켜 중국과 북한 당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공안의 감시와 북한의 탈북자 색출 시도를 강화시켜 오히려 재중 탈북자들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북한 주민의 탈출을 부추겨 북·중간 외교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북한 정권을 결과적으로 붕괴시키기 위한 의도를 노골적으로 깔고 있다. 보수적인 북한 관련 NGO들의 경우 이같은 의도에서 기획 탈북을 유도하기도 한다.

천씨는 “그렇다고 중국에서 고생하는 탈북자들을 나몰라라할 수는 없을 일”이라며 “개인적으로는 북한 정권의 붕괴를 바라지만, 그것 때문에 탈북자들의 국내 입국을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탈북 지원 단체인 ‘좋은벗들’의 이승용 평화인권부장은 “기획 탈북은 비효율적인데다 탈북자들을 정치범으로 몰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한다.

탈북자의 인권을 보호한다기보다 북한과 중국의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고발하는데 더 주안점이 있기 때문에 탈북자에게 오히려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부장은 “기획 탈북은 인권운동이 아니라 정치운동”이라고 비난했다. 기획 탈북은 ‘탈북자’를 내세워 정치적 ‘효과’를 노리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일본의 반북한 우익단체나 미국의 보수단체들이 국내 탈북 지원 단체들을 후원하고 있는 까닭도 이같은 정치적 효과와 무관하지 않다.

북한 선교단체들의 활동도 일각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북한구원운동본부의 오태민 사무국장은 “지상의 법은 기독교인들에게 의미가 없다”“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사명이다. 남북한 당국이 막는다고 해서 북한 선교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오국장에 따르면, 선교를 위해 북한에 네명의 선교사가 들어가면 세명이 죽고 한명이 살아 남는다고 한다. 그는 이같은 ‘목숨을 건 선교활동’을 담은 테마 영화를 준비 중이다.

이 단체는 교인들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벌여 탈북자를 구출하고 ‘북한의 자유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천씨가 이끄는 두리하나선교회도 북한 선교를 표방하고 있다. 그는 북한에 있는 ‘지하교회’를 후원하고 성경을 반입시켜 북한 주민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그는 “북한의 지하교회에서 70∼80여명의 신자들이 모여 예배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선교’는 탈북자 지원의 매개로 활용되기도 한다. 천기원씨는 “지금 북한에선 김정일 위에 돈이 있다. 달러만 주면 무슨 짓이든 한다. 일부에서 비판하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그들에게 달러를 주고 있다. 실제로 신앙을 위해 선교단체를 찾아오는 탈북자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털어놓는다. 이쯤 되면 돈과 복음을 맞바꾼다는 비난을 받을 만도 하다. 탈북자들에게 경비를 받아 국내 입국을 추진하는 선교단체들은 안팎의 비난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일부 악덕 선교단체들은 국내외 후원금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탈북자 지원 활동에 나선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탈북자 시장’은 나날이 커질 전망이다. 오는 9월 미국 상원에서 ‘북한 인권법안’이 통과되면 탈북자와 탈북자 지원 단체에 상당한 액수의 달러가 지급될 것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북한 인권 관련 단체에 2005년부터 3년 동안 매년 2백만달러가 지원되고, 북한 여성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하는 단체나 개인에게는 같은 기간 매년 2천만달러를 지원하게 돼 있다. 한 탈북 지원 활동가는 “탈북 지원 활동을 벌이는 선교단체 등에서는 벌써부터 미국의 지원금을 받으려고 혈안이 돼 있다. 탈북자들도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가길 원하고 있다.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데다 1인당 수천달러의 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지원되는 ‘달러’를 기대하는 것은 비단 이들 단체만이 아니다. 재중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이 법안의 내용이 잘 알려져 있다. 탈북 브로커들에게 뇌물을 받고 탈북자의 국경 통과를 묵인하는 중국 관리들도 자신들이 챙기는 뇌물 액수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국내 탈북자들도 이 법안의 통과를 고대하고 있다. 1996년 가족과 함께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 이영미(가명)씨는 “남북 관계가 좋아지는 것이 탈북자들의 처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는 북한에 미운 오리새끼이고 남한 당국에도 뜨거운 감자다. 탈북자는 마치 ‘맷돌 사이에 끼인 자갈’ 같다는 느낌이다. 난민으로 인정받아 미국에 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털어놓았다.

국내 입국한 탈북자들은 서울 노원구·양천구·송파구 일대에서 집단 거주촌을 형성하고 있다. 8년 전 입국한 탈북자 동지회의 이해영 사무국장은 “탈북자 1만명 시대가 되면 정치권에서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한국에 먼저 들어온 탈북자 가족들이 중국을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휴대폰을 보내 서로 연락하기도 한다. 5천여명의 탈북자 가운데 80%는 북한에 돈도 보내고 전화 연락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로커나 단체들을 통한 탈북도 수월해졌다.

개인이나 단체의 힘을 빌려 탈북자들이 국내로 대거 들어오고 있지만 정부는 “민간 활동이라 규제하기 어렵다”며 발을 빼고 있다. 무정부적인 ‘탈북자 시장’에 대해 수수방관하고 있는 셈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통제가 불가능하다. 더구나 남북 관계가 걸려 있어 정부가 나서기도 힘든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탈북자 대량 입국 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탈북자 지원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부담이다.

정부는 최근 탈북자에 대한 정착 지원금은 줄이고 취업 격려금을 늘리는 방식으로 탈북자 지원 정책을 선회했다. 하지만 일각에서 탈북자 지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재외 탈북자를 관리하는 외교부의 경우 아무런 대책 없이 방관만 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주중 한국 대사관은 탈북자 문제에 대해 실질적으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어렵사리 기자와 통화한 외교부 관계자들은 “잘 모르겠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이우영 경남대 교수는 “탈북 입국자가 1만명이 넘어선다면 이들에게 지원되는 금액은 1조원이 넘어선다. 과연 우리 사회가 그럴 만한 역량이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불법 체류자에 대한 차별이 심한 데다 건국 이후 한국이 받아들인 난민은 불과 세명밖에 되지 않을 만큼 ‘난민’ 문제에 대한 경험은 전무하다. 이교수는 “정부가 남북 관계를 의식해 탈북자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적극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원두씨는 탈북자를 위해 여권을 위조했다가 공문서 위조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받았다. 그는 “탈북자를 입국시키기 위해 여권을 위조한 것이지 범죄에 사용한 것도 아닌데 왜 문제삼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한다. 정부가 탈북자의 국내 입국을 돕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법으로 규정해 막는 것도 아닌 마당에 자신을 구속시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다.

탈북 입국자들은 남한 사회에서 따돌림당하거나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신분을 감추며 살아간다. 모두가 그 존재를 알지만 남북한 정부와 중국이 그 실체를 애써 부인하고 싶은 존재가 바로 탈북자다. 지금 탈북자 세상에는 목숨을 걸고 탈북을 한 탈북자와 탈북을 부르는 사람들만 존재할 뿐, 그들을 위한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2004.08.26(목) 오후 2시 12분 [644호]

                                 

 

북한에도 주님의 손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