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만난 인물>  

통일을 기다리는 사람, 두리하나 선교회 대표 천기원 선교사  

2004 10

남과 북이 하나 되는 날, 둘이 하나 되는 통일의 그 날을 소망하며 국내외의 탈북자를 돕는 데 온 힘을 쏟으며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 1999년 10월에 설립된 두리하나선교회의 천기원 대표다. 두리하나선교회는 설립이후 지금까지 약 500여 명의 탈북자를 안전하게 남한으로 입국시켰으며 그들의 성공적인 정착과 자립을 위한 재교육과 전도 사역의 숨은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천 선교사는 최근 김진홍(두레공동체운동본부) 목사와 김준곤(한국대학생선교회) 목사와 더불어 통일마을(가칭) 설립준비에 여념이 없다. 궁극적으로는 복음적 통일 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통일마을* 공동체 조성 계획은 모든 북한 선교에 대한 철학과 정책이 적용되는 훌륭한 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천기원 선교사, 그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탈북자 선교의 중요성과 통일을 대비하는 선교란 무엇인지에 대해 들어보았다.  

두리하나선교회의 '두리하나'는 에스겔 37장 17절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의 둘이하나에서 비롯되었다.

천기원 선교사는 1995년 1월, 평신도로 호텔 사업을 하던 가운데 중국 훈춘 지역에 가게 되었다. 두만강 가를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북한 땅의 주체탑이 나타나길래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차를 세웠다. 꽝꽝 얼어붙은 두만강을 바라보던 중 강가에 나란히 놓여 있는 신발 두 켤레가 눈에 띠었다. "이 추운 겨울날 얼음낚시를 하는 북한사람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람이 물에 빠져 얼어 발이 두 개 나온 것 입니다."

천 선교사는 몹시 놀라 안내원에게 시체가 아니냐고 말했더니 안내원은 자주 있는 일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응답했다.

"처음 본 북한 사람이 시체라는 사실이 충격이었습니다. 1시간 후 훈춘에 도착 했을 때는 7~8세의 어린 아이들이 몰려오면서 돈을 좀 달라고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경찰이 나타나더니 그 아이들을 마구 곤봉으로 때렸습니다. 아이 중 한 명은 귀가 툭 떨어져 나갔고 어떤 아이는 머리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그 아이들은 꽃제비들이었다. 같은 날 저녁 경찰에 무자비하게 끌려가는 북한 여자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천  선교사는 그 날 밤 하루 동안 목격한 탈북 동포들의 참상에 잠을 못 이루었다.
 
확신에 찬 나의길, 소명의 길

중국에서 우연히 찾아간 훈춘 기독교 교회에서의 주일예배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천 선교사는 주일 성수만 겨우 지키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었다. "예배가 11시인데 두 시간 전부터 200여 명 가까이 모여 기도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석탄 난로 주위에 꽉 들어찬 모습이 어린시절 시골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닳디 닳은 성경책 한권을 여럿이 둘러 보는 모습,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그 모습이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 후 한국에서 1년간 천 선교사는 사업에서 큰 손해를 보게 되었고 엄청난 빚과 친척들과의 불화로 고통속에 하루하루를 지내야 했다.  

천 선교사는 모태신앙으로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목회 권유를 받아왔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들 같아 몹시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다니엘과 같이 어려서부터 몸과 마음의 행실이 깨끗한 철저히 준비된 자가 목회의 길을 가는 것이지 저 같은 사람이 목회를 한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천 선교사는 우여곡절 끝에 또한 하나님의 택정하심에 따라 1996년부터 신학 공부를 시작하였고 1999년 북한 선교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확신과 비전을 갖게 되었다. 1999년 신학생 시절 김진홍 목사가 인도하는 '통일 선교학교'의 학생신분으로 중국 선교 여행길에 올랐다. 중국의 연길 지방에서 4년 전 사업차 들렀을 때 본 광경과 똑같은 광경을 목격한다. "똑같이 북한 사람의 시체가 떠내려갔고 매맞고 있는 꽃제비 아이들, 연길 역전에서 팔려가는 북한 여자....공교롭게도 똑같은 이 모습에 충격을 받고 이들을 도와야 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 후 마음맞는 동역자들 11명이 모여서 기도하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두리하나선교회다.   

탈북자들의 인성(人性)에 더 큰 관심을

천 선교사는 2000년 초에 중국에서 탈북자 21명을 무사히 데려왔다. 깊은 산 속을 몇 시간씩 걷고 달리며 지독한 독감과 코피를 쏟기를 날마다하며 감옥생활까지.... 목숨을 내어놓고 탈북자 돕기에 나섰다.

"처음엔 21명의 목숨을 살렸다는것에 대해 스스로 대견스러웠고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에 몹시 흥분되었습니다. 청년 4명은 신학교에 보내어 북한 선교를 위한 제자로 삼을 계획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원에 면회 가서 만난 스물 한 명의 탈북자들은 천 선교사가 기대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휴대폰이 필요하다 길래 구입해줬더니 한달 통화료가 몇 백만원씩 나왔고 끝없이 무언가를 요구하기만 했다. 진심어린 감사가 없었다. 정착교육이 끝났는 데도 아무도 고맙다 찾아오지 않았으며 교회에도 오질 않았다.

"처음엔 내가 무슨 일을 한 것인가 싶었고 허탈했지만 기도 가운데 이유와 해결책을 점점 알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종, 청지기의 사명을 가지고 있으니 그 사명에만 충실하고 나머지는 모두 주께 맡기고 서운해 할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탈북자를 돕는다고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는 나는 온전히 사라져야 하며 오직 예수님의 영광이 이 일을 통해 나타나기만을 바라야 함을 알게 된 것이지요."

탈북자를 돕다가 그들에게 '고맙다' 는 말을 듣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모든 것을 공평하게 정부에서 나눠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탈북자들은 한국에서의 정착금과 교회에서 주는 도움들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도와주는 것이 고마운 것이 아니라 되려 덜 도와 주는거 아니냐고 불평할 때 많은 사람들이 북한 선교에 대해 심한 회의를 느끼고 떠난다고 한다.

천 선교사는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예수를 위해 이 일을 하는 것, 그 순수한 동기로 그들을 돕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북한에서의 가난과 탈북하면서 겪은 수많은 비인격적인 대우로 그들의 인성은 심각하게 파괴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절망적일까, 얼마나 아플까를 생각하며 애통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한국 교회의 잣대, 나의 잣대로 그들을 바라보고 선교의 성급한 열매들을 바란다면 북한 선교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은 눈 앞의 성장과정을 빠른 시일내에  보길 원합니다. 내가 도와준 그들이 빨리 교회에 나오길 원하고, 빨리 새벽기도에 나오길 원합니다. 약속 잘 안 지키고 고마움을 모르는 그들에 대해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일에의 준비

국내거주 탈북동포는 약 5,700여 명이다.  천 선교사는 이들은 통일을 맞기 이전에 우리가 쉬지 말고 연구하고 도와야 할 대상,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라고 보내어 주신 양떼라고 말한다.

"추진중인 탈북자 통일마을도 이것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공적으로 자립생활을 해 나가고 남한 사람과 하나가 되고 복음을 받아들이기까지 계속해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는 복음이 아니고서는 남과 북의 통일을 이룰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 때는 아무도 모르지만 제 생각에 2010년 안에는 통일은 아니더라도 교류 또는 북한의 개혁·개방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남한에 와 있는 5,700여 명의 탈북자들에게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는 것과 남한사람들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결실이 그 전에 꼭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 실험에 실패하면 통일은 이루기 쉽지 않습니다."
  
5,700여 명의 탈북자들, 이들의 영혼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도와주는 것,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라는 선교이며 더불어 통일에의 준비인 것이다.

천기원 선교사는 통일의 열망을 안고 이 일을 해오면서 수없이 많은 시련과 아픔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후회는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통일한국의 푯대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이들이 있기에 북녘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날이 멀지 않았음을 기대하게 된다.

2004년 10월호 >2004.09.25< 정유정기자

                                 

 

북한에도 주님의 손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