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탈북자들 ‘생명의 은인’ 천기원 전도사
“탈북자들 자유 찾아주는 게 내 기쁨”

 
40세 나이에 신학을 접한 후 중국에 선교여행을 하다 탈북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고 그들을 위해 일해 온 천기원 전도사. 7개월 동안 네이멍구 지역에서 구금생활을 겪다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금도 북한 어린이들이 2천위안(31만원)에 중국내에서 팔려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임예은 기자>

지난해 12월 탈북자들을 중국에서 한국으로 데려오려다 감옥에 수감 중 풀려 난 ‘두리하나 선교회’ 천기원(46) 전도사가 지난 8월2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탈북자 12명의 탈출을 도운 혐의로 기소된 그는 혹한으로 유명한 네이멍구 만저우리 구류소에서 7개월여 동안 구금돼 있다가 지난 5일 중국 돈 5만위안(약 8백만원)의 벌금을 내고 석방됐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체포된 적은 있지만 감옥생활까지 한 것은 처음이었다. 두리하나 선교회 한 후원자가 “천 전도사는 한 번쯤 잡혀 진한 고생을 해봐야 다시금 무모하게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오로지 탈북자 한 명이라도 더 한국에 데려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성적으로 뛰어다녔다.

그동안 스스로 인터넷을 배워가며 홈페이지를 개설해 탈북자 들의 비참한 현실을 알렸고, 최소 경비도 본인이 부담했다. 그의 손을 거쳐가 입국한 탈북자 수만 해도 1백70여명. 개인·단체를 통틀어 최고의 수치다. 하지만 의아스럽게도 ‘생명의 은인’인 천 전도사를 찾는 탈북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의 끝없는 잔소리 때문이라고 멋쩍어 하며 웃어 넘긴다. 지난 8월26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두리하나 선교회’사무실에서 천 전도사를 만나봤다. 그?“최근 중국의 수사가 더 심각해져 많은 사역자들이 철수하고 있다”며 중국 내에서 떠돌고 있을 탈북자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워 잠을 이루기 힘들다”고 말했다.

끼니때마다 물 한잔 만두 하나가 전부

- 수감생활은.
▲중국 감옥에 투옥된 뒤 몸으로 탈북자의 고통을 깨달았다. 체포된 네이멍구 지역은 영하 35∼45도를 내려갈 정도로 혹한인데 담요 한 장으로 버텼다. 특히 3∼4평 감방에 8명이 수감돼 모로 누워야 겨우 잘 수 있었다. 게다가 점심은 아예 없었고 아침저녁 끼니때마다 물 한잔과 밀가루만으로 만든 만두 하나씩을 받았을 뿐이었다. 처음엔 아무 것도 먹지 못했고 설사만 났다. 특히 물 속에는 모래가 다량으로 섞여 있어 물 한모금 제대로 마시기 힘들었다.

- 입국 경위는.
▲비행기를 타고난 후에야 한국으로 강제추방됐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 5일 석방된 후 체포 당시 중국공안에 압수됐던 현금 1천3백만원과 카메라 등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중국 검찰은 거부한 뒤, 추가 조사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현금과 카메라 등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추가조사를 하게 되면 최소한 1년은 더 감옥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에 달라는 말을 못했다.

- 기소 혐의는.
▲ 비법 월경자 들을 운송하여 변경을 탈출시킨 혐의다. 지난해 12월 탈북자 들의 변경 탈출을 도운 혐의로 형사 구류됐다. 내가 예전에 탈북자 인줄 알고 한국에 입국시켜 준 일부 조선족이 1인당 5천위안(약 78만원)을 받고 탈북 장사를 한 것까지 모두 뒤집어썼다. 이들을 탓하고는 싶지는 않다. 이들은 내가 검찰 조사까지 받을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 조사 받은 내용은.
▲중국 검찰은 내가 아무런 이득도 없이 탈북자들을 도와주려는 이유에 대해 집중적으로 반복해 조사했다. 목회자로서 탈북자 들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답하자 이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북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중국의 동포인 대만사람들과 비유했다.

대만사람이 한국에 밀입국, 어렵게 살고 팔려 다닌다고 가정할 때 중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점을 재판 과정에서 강조한 것. 하지만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수십 차례에 걸쳐 조사를 받고 또 받았다. 그리고 조사가 다 끝나고 가서 중국 검사는 ‘당신 좋은 사람이다. 좋은 일을 한 것은 인정하지만 중국 법을 어긴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처벌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해주었다.

브로커 비용·경비 명목 단 한푼도 받아서 안돼

- 조사시 뇌물을 쓰자는 제의를 받지 않았나.
▲ 실제로 브로커들로부터 ‘5만∼8만위안(약 7백만∼1천1백만원)을 내면 한국에 무사히 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유혹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감옥 속에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다면 어려움을 헤쳐 나갈 것이라고 생각해 뿌리쳤다.

주위에서는 ‘이대로 있다가는 감옥에서 7년은 썩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나는 차라리 7년이 아니라 더 오래 있어도 뇌물을 쓰지 않겠다고 내 소신을 밝혔다. 결국 나와 함께 갇힌 중국측 협력자들은 뇌물을 썼음에도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나는 풀려 났다.

지난해 12월 탈북자를 지원하다 중국-몽골 국경지대에서 체포된 두리하나 선교회 천기원 전도사가 지난 8월5일 중국 법원에 인민폐 5만위 안(약 8백만원)을 내고 천신만고 끝에 석방된 뒤 기념 촬영한 사진.

- 탈북자 지원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만 40세인 뒤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다가 지난 1999년 10월 우연히 중국에 선교여행을 가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북한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탈북 여성들이 중국 돈 6백위안(약 10만원)에 팔려 가는 것을 보고 돕기로 결심했다.

- 정착금을 나누는 조건으로 도와주는 탈북 회사가 급증하고 있다는데.
▲정착금 3천7백만원 중 1천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도와주는 탈북 회사가 있다고 들었다. 심지어 일부 단체도 최소 경비로 2백∼3백만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절대 받아서는 안된다. 브로커들이 횡행하게 되면 결국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현재 드러나지는 않지만 탈북자 들의 법범 행위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모두다 돈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또한 불쌍하다고 무분별하게 도와주면 안된다. 이들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방안이 더 필요하다. 한편 이들도 북에서의 생활방식을 버려야 한다. 한국에서는 일을 해야만 돈을 버는데 일부 탈북자들은 일을 하려고 않는다. 북에서는 출근도장만 찍으면 그만 이지만 한국은 북과 사정이 달라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에 적응을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돼서 잔소리를 많이 해서인지 현재 연락이 오는 탈북자들은 10여명에 불과하다.

- 천 전도사는 경비를 어떻게 마련하나.
▲내가 직접 마련하거나 후원금 등을 통해 마련했다. 탈북자 들에게 돈을 받고 한다면 이 일을 할 수 없다. 인간적인 보상을 기대한다면 한 달도 버텨내지 못하고 나뒹굴었을 것이다. 다만 탈북자 들이 자유를 찾도록 돕는 일이 내 마음에 기쁨이 되고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한다.

제3국과 국내서 탈북자들 지원

- 가장 기억에 남는 탈북자는.
▲먼저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 김군일과 함께 그의 어머니와 탈북 소녀 1명을 데려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무 것도 모른 상태에서 지도만 살펴본 다음에 무작정 중국으로 넘어가 실행에 옮겼다. 당시 고생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검문과 여권검사를 무려 14번이나 받았지만 다행히 여권을 소지한 나와 김군만 하게 돼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한편 지금껏 1백70여명의 탈북자들을 도와줄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북한 식혜를 부탁했다. 그런데 아직도 한번도 맛을 본 적이 없다. 당시에는 ‘생명의 은인’이라며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며 반드시 북한 식혜를 갖다 준다고 약속하지만 아직도 지켜지지 않았다.(웃음)

- 정부는 탈북자 지원 단체에 대해 자제를 당부하고 있는데.
▲정부가 탈북자 문제를 쉬쉬하고 있는 사이 중국으로 탈출한 수만 여명의 탈북자 들이 배고픔과 공포에 떨고 있다. 특히 중국 내에서 16∼17살 탈북 여자 아이들이 6백∼2천위안(31만원)에 팔려가는 게 성행하고 있다. 굶는 것도 억울한데 우리 민족이 다른 나라에 팔려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말이 되는가. 한국정부가 자제하라면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 앞으로 활동계획은.
▲중국 입국은 어렵게 됐기 때문에 제3국과 국내에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겠다. 탈북자 들이 직 간접으로 e-메일과 전화 등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탈북자들을 도와줄 것이다. 9월달초 미국 국제 종교 자유 위원회 등을 방문, 중국 내 탈북자에 국제난민지위를 부여하고 이번에 붙잡힌 탈북자의 북한송환반대 등을 요구할 것이다. 또한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질 것이다. 기대해도 좋다. 지금 현재로서는 밝힐 수 없는 단계임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성강현 기자 2002년 09월 10일 347호

                                 

 

북한에도 주님의 손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