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탈북자 지원하다 옥고 치른 천기원 전도사 증언
천기원 전도사 초청 '북한선교 교회연합 기도성회' 강연 포스터

1999년 10월 2일 설립된 통일한국을 위한 북한선교단체인 두리하나선교회 대표 천기원 전도사는 중국에서 탈북자를 지원하다 지난해 12월 중국과 몽골 국경지대에서 체포돼 220일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지난 8월 석방됐다. 그는 지난해 체포되기 전까지 모두 147명의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탈출시켰다.

다음의 글은 천기원 전도사가 지난 9월 5일 YWCA강당에서 통일마을기도회와 탈북인권연대가 주관하고 교회연합 통일마을이 주최한 '북한선교 교회연합 기도성회'에서 증언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이날 강연에는 북한선교와 탈북난민에 관심있는 종교인과 젊은이 200여명이 참가했다. /편집자 주

◆어느 탈북자 가족이야기= 여러분을 만나보니까 내가 감옥에 있을 때 기도 안해주신 분이 없군요. 각 교회마다 각 모임마다 기도해 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먼저 청진 송평구역이라는 북한 마을의 한가족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97년, 7살 철민이와 4살 철웅이, 그리고 아빠 엄마가 5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주리다 철웅이가 그해 4월 사망했고 1년후엔 철웅이 엄마도 사망했습니다. 철민이 아버지는 98년 4월 19일 철민이를 등에 업고 북한을 탈출해 걸어서 8일만에 중국 화룡에 도착했습니다. 중국에서 철민이와 함께 여기저기 쫓겨다니다 1년 후인 99년 5월 철민이를 다시는 찾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후 외국인선교사에게 입양시켰습니다. 그 후 철민이 아버지는 일당 중국돈 10원(한화 1200원 정도)을 받고 시멘트공장에서 일하고 노동판에서 힘든 일을 하다 허리를 다쳐 쉬고있는 상황에서 내가 그를 만났습니다.

만나게 된 배경은 내가 2000년 8월 처음으로 탈북자 구출활동을 하면서 동남아를 통해 2명을 무사히 데려온 뒤였는데 어떤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중국 화룡이라는 곳에 가면 너무나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착한 탈북자가 있는데 그 사람을 꼭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철민이 아버지를 만남= 2000년 9월 8일 밤 12시 그 사람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 사람은 왕청 시골 산골짜기 초막집에서 허리를 다친채 있었습니다. 영혼과 심성이 너무나 맑아 보였습니다. "다친 허리가 많이 아프면 우리 피난처에 와서 성경공부나 하고 몸을 쉬라"고 했더니 괜찮다면서 뼈가 부러지지 않는 한 자기가 일해 번 돈으로 생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더 이상 쫓겨다니지 않고 잡혀가지도 않는 곳에서 하루만이라도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내가 두 가지 부탁을 할테니까 약속만 지켜준다면 한달 후 든 일년 후 든 언젠가는 데리러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첫째는 어떤 시간이든지 시간을 정해 내가 올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말고 기도해라. 그리고 두번째는 성경말씀을 읽어라, 특별히 출애굽기를 한번 읽어봐라, 출애굽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애굽을 탈출했는지 그 과정이 있으니까 필히 관심을 갖고 읽어보라고 다짐을 받았습니다. 그후 나는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탈출 성공= 당시 나는 탈북자 20여명을 탈출시킬 계획을 세우고 2000년 12월 1일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가장 먼저 그 사람을 찾아갔는데 그는 성경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약속은 지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 나머지 19명을 인도해 12월 초순 연길을 출발해 몽골에 무사히 들어갔습니다. 12월이면 그 지역은 기온이 영하 40도입니다. 그들을 무사히 넘기고 나는 기차를 타고 울란바트로 대사관에 가서 탈북자 20명이 왔으니 난민처리를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대사관에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몽골 정부에서 한 명도 받아줄 수 없다면서 돌려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뜻밖의 시련= 대사관에서 말은 그렇게하지만 설마 여기까지 목숨걸고 왔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날 아침 대사관에서 전화가 왔어요. 이미 몽골정부가 10명을 돌려보내고 신문에 발표했다면서 나머지 10명은 오늘 저녁에 돌려보낸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하루종일 고민하다 침대에 올라가 무릎꿇고 5시간동안 울면서 이 불쌍한 생명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하나님께서 "이 생명은 나의 생명이지 너의 생명이 아니다. 내가 책임지마"하는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내가 만용을 부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여섯 명이나 일곱 명만을 데리고 왔었는데 욕심을 부려 20명을 데려왔다가 오히려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 아닌가하는 후회도 일었습니다. 방법이 없어 나는 "이런 사실을 전세계에 알리겠다, CNN과 각국 기자들을 불러 폭로하겠다"면서 대사관에 떼를 썼습니다. 그때 마침 CNN기자가 그곳에 와있었습니다. 3일동안 대사관 답변을 기다리다 12월 6일 대사관에 전화했습니다. 만약 오늘까지 남은 10명을 처리해 주지 않으면 스위스로 가서 12월 10일 김대중 대통령이 스위스에서 노벨평화상을 받는 자리에 전세계 기자들을 모아놓고 노벨평화상 받는 나라에서 탈북난민 20명이 대사관의 거절로 북송됐다는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위협 했습니다. 그랬더니 대사관에서 "더 이상 떠들지 말아라,몽골정부에서 10명은 받아주겠다고 한다"는 약속을 해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당장 공항으로 달려가 베이징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늘의 도움= 앞서 돌려 보내진 10명의 생사를 확인했더니 우리 사역자들이 "지금 장춘쪽으로 10명이 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북송시키기 위해 북한쪽으로 이동되고 있는줄 알았는데 군인 4명이 이 사람들을 호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그곳에서 돌아오는데 차비가 1인당 250원이니까 10명이면 2500원이니 중국 군인들에겐 매우 큰 돈입니다. 그 곳 한달 임금이 보통 300원에서 400원 정도인데 그 많은 차비를 군인들이 감당할 리가 만무하고 아마 나와 우리 사역자들을 검거하려는 유인책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알아보았더니 장춘 못미친 곳에서 군인들이 탈북자 10명?조심해서 잘가라며 돌려보냈다는 것입니다. 정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10명을 인수하고서도 의심이 들어 이집 저집을 옮겨 다니며 숨어 지냈는데, 지금까지도 그 일이 의문스럽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 군인들을 천사로 만들어 보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10명을 먼저 서울에 보냈고, 1월 1일 내가 다시 중국에 들어가 한 명이 추가된 11명을 몽골을 통해서 서울로 데려왔습니다.

◆탈북자의 고민= 앞서 이야기 한 철민이 아버지는 한국의 정착보호소인 하나원에 들어가 교육을 잘 받고 있었는데 2월쯤 내가 면회를 갔습니다. 기뻐하고 반가워는 하는데 얼굴에 슬픔이 가득 했습니다. 외국인 선교사에 입양시킨 철민이 때문이지요.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끝에 철민이를 찾아냈고 선교사를 설득시켜 철민이를 데려오기로 약속 받았습니다.그리고 철민이를 데려오기 위해 다시 중국에 들어갔습니다.

◆절반의 성공= 그때 중국의 어느 지역에 탈북자가 최고 70명까지 있었는데 대부분은 한국으로 데려오고 27명이 남아 있었으며 그사람들도 마저 데려오려고 기회를 보고 있던중 14명이 중국에 잡혀갔습니다. 남아있던 사람들중 다른 사람을 먼저 보내고 자기는 마지막에 가겠다는 권능(가명)이라는 헌신적인 사람이 있었지요. 그러나 나는 권능이를 포함해 다음날 남아있는 사람들 13명을 데리고 출발했습니다. 권능이를 리더로 그의 아내와 철민이 등 7명을 1차로 출발시키고, 내가 나머지 6명을 데리고 2차로 출발했습니다. 우리 팀보다 먼저 중간목적지에 도착한 일행중 권능은 사전답사를 하다 체포됐습니다. 리더가 잡혔으니까 남은 사람들도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전화로 지시할테니 출발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탈북자사역을 하면서 리더 외에는 길을 안가르쳐 주고 돈도 안맡깁니다. 급박한 상황에서는 서로 싸우기 때문입니다. 그 팀은 지도나 나침반도 없이 단지 해를 기준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되는지를 알려줬는데 그들이 길을 잃어 사막에서 헤매게 됐습니다. 나도 어딘지 모르는 지역인데다 전화기 배터리마저 없어 연락이 끊겼습니다. 내기 이끌고 간 나머지 팀은 무사히 잘 넘겼는데 먼저 간 일행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뒤 몽골 군부대에서 연락이 왔는데 다섯명은 잘 넘어왔는데 한명이 사망했다고 했습니다.사막에서 물 없이 이틀을 버티며 길을 헤매는 과정에서 결국 철민이가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권능이는 2001년 7월에 잡혔는데 북송됐다가 그해 12월에 다시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돌아왔으나 내가 감옥에 있는 동안 탈북자들의 탈출을 돕다 지난 4월에 붙잡혀 지금까지 연길감옥에 있습니다.

◆북한선교를 하려면= 두리하나단체를 통해 한국으로 탈출에 성공한 탈북자가 170명 정도되지만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나를 위해 기도모임에 참석하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찾아와 인사한 사람은 오늘 여기에 온 네 다섯명 외에는 없습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이 자리에는 북한선교에 관심을 가진 많은 분들이 참석했는데, 북한선교는 순교한다는 정신으로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려고 하면 안됩니다.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속고, 중국에서도 속고, 여기 저기 떠돌면서 많은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그사람들 마음을 예수님의 삶과 복음으로 치료해줘야 합니다.

목숨 걸고 북한 들어가는 것만이 순교가 아닙니다.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정말 내 형제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그들의 마음이 움직일 때까지 따뜻한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기초가 돼야 북한선교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2002/09/17 13:33  정리= 우상규기자 carrot@sgt.co.kr

                                 

 

북한에도 주님의 손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