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인간적 대가를 바라지 말고 도와야 합니다"

  탈북자 탈출시키기

현재 북한은 줄기차게 이어져온 식량난을 이기기 위해 자기 변모를 꾀하고 있다. 북한은 작년에 7.1경제조치를 발동하고, 사회주의의 틀 안에서 자본주의적 이념과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기업의 자율경영이 확대되고, 기업은 생산원가를 고려하여 생산계획을 수립하고 이윤을 추구하고 있다. 똑같이 분배하는 것에서 벗어나 성과급제와 능력제를 도입하고 있다.

종전의 식량배급제가 무너지면서 가계는 “자력갱생”이 불가피 해졌다.  이제 주민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처지를 맞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이나 기타 외국으로 떠나는 사례는 급속도로 늘고 있다.

그에 따라 해외로 도피한 탈북자들의 인권이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대개 중국으로 피신하는 탈북자들은 공안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조선족 행세를 하며 전전긍긍하고 있고, 여성 탈북자들은 인신매매를 통해 유흥가로 팔려져 접대부나 윤락녀로 전락되기도 한다. 취직을 해도 임금을 제대로 못 받는 것이 다반사이며 위와 같은 부당한 대우를 호소할 곳이 없다.

그리고 그들이 북송되면 대개 모두 공개총살을 당한다.  탈북자들이나 종교인들이 임신한 경우에는 반동의 씨앗이라고 해서 무조건 몽둥이 구타나 약물주입을 하여서 낙태를 시킨다.  그리고 만삭인 경우 아기가 태어나면 바로 수건을 덮어서 쓰레기통에 넣어 죽여 버린다.

교회를 갔다든지, 남한의 종교인을 만나면 정치범수용소에 간다. 그곳에서 무시무시한 대우와 감시를 받으며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는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바라보며 그들을 한국으로 이송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나 종교단체의 활동이 있었다.  두리하나 선교회의 천기원전도사는 중국에서 탈북자 피난처를 운영하며 모두 380여명의 한국행을 성사시켰다. 그러던 중 중국공안에 잡혀 7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하였다.

그의 감옥생활은 세인의 주목을 끌게 되었고, 국제적으로 언론에 보도가 되었다. 그의 체포와 석방을 통해 탈북자들의 인권이 조금이나마 국제적 관심사가 되어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은 큰 수확이라고 볼 수 있다.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두리하나 선교회를 방문하여 그를 만나 교회는 과연 탈북자들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물어 보았다.

"하나님, 저는 이곳에 와서 선교하지 않게 해주세요"

천기원 전도사는 원래 북한선교에 대해 관심이나 비전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다.  그는 사업가였고, 많은 돈을 벌기도 하였다. 그런데 1995년 사업차 중국에 들어갔을때 '도문'에서 '훈춘'으로 가는 길에서 탈북자를 보게 되었다. 그는 두만강 가에 신발 같은 것이 보여서 가까이 가서 살펴보았는데 그것은 탈북자들이 월경하다 얼음물에 빠져서 죽은 시체였다. 그가 처음 본 탈북자는 시체였던 것이다.

그가 두 번째로 보게 된 탈북자는 훈춘에 갔을 때 만났다. 천전도사가 꽃제비(탈북 청소년)에게 돈을 건네주니 바로 공안요원들이 와서 두들겨 패는 장면이었다.

세 번째로 본 탈북자는 봉고에 실려 인신매매 업자들에게 팔려가는 17세의 여성이었다. 그 다음날 그는 훈춘교회에 가서 “하나님, 저는 선교사로 나가도 이런 곳에는 오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사업에 신경을 쓰다 보니 그런 기억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던 중 1996년 송내중앙감리교회 김종순 목사가 목회를 권유하였고, 3개월 간 고민하다가 목회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하였다.  1999년에 다시 중국에 갔을 때 똑같이 시체가 떠  내려가는 것을 보았고 꽃제비들이 돈을 받다가 두들겨 맞는 것을 보았다.  이런 상황에 마음 아파하던 천 전도사는 10월에 본격적으로 북한 선교를 시작했다.  이 두리하나 선교회도 10여명이 모여서 기도회를 시작한 것이 동기가 되어 출발하였다.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

현재 교계에서 중국으로 탈북한 사람들을 보는 관점은 서로 다르다. 중국에 나온 탈북자들을 잘 양육해서 북한에 도로 보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가기 싫은 자들은 중국 내에서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에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한국에 데려오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천 전도사가 중국에 나온 탈북자들을 돕는 사역을 펼치게 된 동기는 철저히 성경에 근거한다.

북한에 직접 들어가 선교할 수 없다면 타지에 나와 있는 북한인을 돌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탈북자들이 중국에 나와서 불법 월경자라는 죄인 취급을 당하고 있으며 어린아이는 고아가 되고, 남자들은 나그네이며, 여자들은 과부가 되는 상황이다. 성경에는 가난한 자, 배고픈 자, 고아와 과부를 먼저 돌보라고 했는데 그들을 먼저 돕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볼 수 있다.

탈북자들의 상황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거의 100%가 받아들인다.  그건 교회에 가면 먹고 살수 있기 때문에 교회의 요구를 들어 주려는 제스처로 볼 수 있다 . 그들은 성경말씀을 읽고 보고 예배를 드린다.

어떤 탈북자는 성경암송을 탁월하게 하며. 목사님보다 더 좋은 설교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전도의 효과는 나름대로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이 국내에 들어오면 신학생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탈북자들이 국내에 들어오면 신학교는커녕 교회도 잘 안나온다. 왜냐하면 그때의 신앙은 어쩔 수 없어 믿은 것이고, 성경을 아는 것에 그칠 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이런 모습에 실망해서는 안 된다.

탈북자들이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단계에서 인격적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는 남한 사람들과는 다른 탈북자들의 모습을 보며 실망하기도 한다. 탈북자는 공산세계에서 살던 사람이라 감사에 인색하다,  그들은 양식도 정부에서 배급을 받았기 때문에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들은 교회도 당연히 먹을 것, 돈, 집을 준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그들이 감사하는 것을 모르는 것을 보고 “내가 도와주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행동을 할까?”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의 눈으로 그들을 판단하니 점점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태도로는 탈북자들을 온전히 포용할 수 없다.

탈북자들은 밥 한 그릇 때문에 자식이 팔려가는 것을 막지 못하고,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을 매우 힘들어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못났다는 자격지심이 있다. 본인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지식이 떨어진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질책보다는 위로가 필요하다. 실제 천 전도사는 그들을 위로하고, 더 열심히 일하라고 격려한다. 한국 사람이 8시간 잘 때 4시간을 자면서 노력하라고 권면한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그들을 알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한다.

단순히 불쌍하다는 식의 감상적인 접근은 의미가 없고 진정한 마음의 배려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실제 탈북자들을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두리하나 선교회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은 대개“내가 이들을 돕는다.” 라고 생각하고 들어온다. 예수님처럼 낮아진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당신들보다 나으니까’ 식의 입장에서 접근하다보니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낮은 자리에서 받쳐준다는 것은 쉬운 것 같지만 쉬운 것이 아니다.

실제로 천 전도사도 나름대로 주의를 하지만 내가 힘이 있으니까 너희들을 돕는다는 시혜자의 의식을 갖는 때도 있다고 한다. 초기에 그는 탈북자들을 위해 자신의 돈을 대가며 헌신적으로 사역했다. 그런데 천 전도사가 목숨을 걸고 탈출시킨 탈북자가 천 전도사를 속이며 돈을 유용해 갔고, 나중에는 배신을 하며 돌아선 적이 있었다. 그 때 천 전도사는 깊은 좌절감과 미움을 갖게 되었고, 3일동안 잠도 못 잘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셨다.

“네가 탈북자들을 위해서 한다고 했던 일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네가 그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그에게 무엇인가 베푼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얻게 된 감정이다.”

이 음성을 들으면서 천 전도사는 깊이 회개하였다.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한 것으로 생각하던 것이 깨어졌다. 자신이 한 일은 오직 하나님의 일이며, 탈북자들에게 감정적 보상을 받지 못해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일을 계속해야 할 점이 이것이다. 탈북자에게 무엇인가를 베푼다는 시혜의식으로 충만해서는 탈북자를 진정으로 껴안을 수 없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예수님의 마음을 회복할 때 탈북자 선교가 가능하다.

조선족과  탈북자의 관계

탈북자와 조선족은 미묘한 관계이다. 그들은 서로 하나의 동포이다. 조선족이 없다면 탈북자들이 지금처럼 한국에 들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갈등관계에 있기도 하다. 조선족이 탈북자의 임금체불과 인신매매를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일 뿐이다.

반면에 조선족의 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쳐 들어가는 것도 일부 탈북자이다. 탈북자들은 조선족에 의하여 자신의 아내와 딸이 팔려갔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조선족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도와주었는데 자신들이 한국에 가면 불법 월경자가 되는 반면, 탈북자들은 한국에 가면 편안하게 살수 있으면서 한국에 가면 아무도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천 전도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물론 이것이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은 그의 말투나 분위기에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두리하나선교회의 비전

우선 두리하나 선교회는 북한을 빠져나온 사람들을 돕는 비전을 갖고 있다. 고아와 나그네와 같은 이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일에 전력하고 있다. 그리고 통일 때 앞장서서 달려갈 일군을 키우는 일을 하려고 한다. 지금도 통일을 대비하여 통일의 일군을 키우는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천 전도사는 하루 속히 중국 당국이 탈북자를 당당하게 난민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북자들은 대개 탈북 과정과 중국에 체류하는 과정에서 인성이 파괴된다. 천 전도사는 육신의 문제 때문에 전인격과 전 가족을 파괴시키는 탈북이 이제는 중지 되여야 한다고 본다. 북한 땅과 체제를 회복 시켜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현재 탈북자들은 대개 이산가족들이다. 그들은 여건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홀홀 단신으로 탈북하여 한국에 망명한 경우가 다반사이며 북에 가족을 두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정착금을 받은 후에 그 돈으로 다시 중국으로 되 건너가 브로커를 사서 자신의 가족을 빼오는 일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또 하나의 이산가족의 문제이다.

천 전도사는 이런 이산가족을 막기 위해서도 탈북을 아예 원치 않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과연 북한 땅은 언제 변화될까?

그와의 대담을 통해 북한의 미래와 탈북자, 통일한국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2003년 9월호


                                 

 

북한에도 주님의 손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