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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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연해진 대남정책
북한의 대남정책은 변했는가. 변했다면 그 변화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김정일 국방의원장의 중국 상하이(上海) 방문을 계기로 북한 대남정책의 변화 여부와 그 향방에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관심의 배경은 김 위원장이 상하이의 놀라운 발전상을 '천지개벽'으로 찬탄하며 대대적인 내부 경제개혁을 실시할 것임을 시사하고, 그 실천 징후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하이를 모델로 한 북한의 `개혁'에 대해 북한전문가들은 '최대 경제지원국이자 협력국인 남한의 도움이 없으면 결코 용이하게 추진될 수 없다'고 진단한다.
통일부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남북 교역은 4억2천515만달러였다. 이는 역대 남북교역 사상 최고치라는 99년의 3억3천344만달러와 비교, 27.5% 증가한 것이다. 남북교역이 급증하면서 남한은 북한의 최대 경제협력 상대국으로 부상했고, 북한 경제발전의 중심 축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상하이와 같은 경제발전과 개혁을 이루고자 한다면 대남정책의 변화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북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남한에서는 북한의 대남정책은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을 기준으로 과거의 적대시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변화론'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보수.우익계의 '불변론'도 만만치 않다.
통일부는 지난해말 발간한 「2000년 남북관계 이렇게 달라졌습니다」라는 책자에서 '남과 북은 과거의 대결과 갈등의 관계에서 벗어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 서로 손을 맞잡는 동반자가 됐다'고 북한 대남정책이 변했음을 강조했다.
국내 진보적 통일단체들은 지난해 북한이 ▲정상회담 ▲장관급 회담 ▲국방장관회담 ▲적십자회담 등 25회의 남북회담에 응했고 이는 과거 당국간 대화와 접촉을 전면 거부하거나 선별적으로 수용해 왔던 북측 태도를 고려할 때 180°바뀐 것이며 대남정책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는 이뤄질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보수.우익단체를 중심이 된 불변론자들은 '북한이 당국간 대화와 접촉에 응했다고 하여 대남정책이 수정 또는 변화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이 올 1월초 신년 공동사설에서 ▲조국통일 3대 원칙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 ▲고려연방제 통일방안 ▲민족대단결을 저촉하는 제도적 법률적 장애 제거 등을 제시한 것을 불변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또 북한이 금강산 관광에서 한국이란 국명 표기를 거부하고 있고, '온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최종목표로 하고 있는 조선노동당 규약 전문을 수정.폐기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를 근거로 불변론자들은 현재의 북한의 변화가 경제난을 해소하기 위한 일시적인 것이며 경제적 이득이 사라지면 다시 적대시정책으로 회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대남정책의 변화론과 불변론이 맞서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그러나 근본적이던, 일시적이던 북한의 대남정책이 과거와는 다른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북한이 대남 인도적 사업에 호응하고, 북한외교관들의 유연해진 대남 접촉은 이를 반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남북간 인적 교류를 자본주의 사조의 침습과 이로인한 주민들의 사상 동요의 원인으로 간주, 남북 주민들간의 접촉을 극력 기피, 통제해 왔다. 북한이 중국으로 탈출한 탈북자들이 남한인들과 접촉했을 경우 정치사상범이란 굴레를 씌워 극형에 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지난해 이산가족상봉이 두차례 성사됐고 올 봄에도 3차 상봉이 이뤄지고 서신교환을 처음으로 실시하기로 한 것은 북한의 대남정책이 유연하게 변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제무대에서의 남북간 외교협력 노력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지난해 7월 남북한 외무장관은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각료회의에서 회담을 갖고 국제외교무대에서 상호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또 중국 주재 주창준 북한대사는 남측 권병현(62) 주중 대사가 이임인사차 북측 대사관을 방문하겠다는 제의를 받아들였고, 7월26일 태극기를 탄 승용차가 북한 대사관에 입성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특히 홍원준 싱가포르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싱가포르 이스타나궁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국빈방문 환영행사(11.25)에 참석, 김 대통령과 악수를 했다.
북한 외교관들이 이처럼 국제 외교무대에서 거리낌 없이 남측 외교관과 접촉할 수 있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통미봉남'(通美封南)으로 불러졌던 북한의 대남배제정책이 변화된데 따른 것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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