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의 행군'

김 주석 사후 체제 붕괴까지 거론되는 총체적인 위기 속에 주민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벌여야 했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북한 스스로 규정한 표현이지만 꽤 그럴듯하다는 느낌도 드는데, 하필이면 고난의 행군이라고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기도 합니다.

굳이 '고난의 행군'이라고 했을 때는 그만한 사연이 있을 법도 한데, 그 연원을 따라가 보는 것도 무의미한 일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우선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라고 하면 1930년대 김 주석의 항일유격대 투쟁사의 한 대목부터 연상하게 됩니다. 북한 주장에 따르면 김 주석이 인솔하는 항일유격대는 1938년 12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일제의 대토벌에 쫒기며 남만주 몽강현 남패자에서 압록강 연안 국경지대인 장백현 북대정자까지 이동하게 됩니다.

남패자에서 북대정자까지는 그냥 걸어가면 6∼7일 정도 걸리는 거리. 이 거리를 유격대는 영하 40도 안팎의 혹한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100여 일에 걸쳐 쫒고쫒기는 숨바꼭질 행군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낮과 밤이 따로 없고 사방에서 시시각각으로 목숨을 위협하는 긴박한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하루 20차례의 전투를 치른 날도 있었다고 합니다. '고난의 행군'은 바로 이를 일컫는 말입니다.

김 주석의 항일 전적을 얘기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고 그래서 북한에서는 삼척동자도 아는 이야기가 돼버린 그 행군입니다. 유격대 지휘부를 가장해 추격하는 일본군을 유인, 궤멸시킴으로써 지휘부의 안전을 지켰다는 유명한 '오중흡7연대'의 신화가 등장하는 무대도 이 고난의 행군입니다.

북한은 이런 신화를 바탕으로 1960년대 초 각 군부대를 대상으로 이른바 '오중흡7연대따라배우기운동'을 벌인 바 있습니다. 1996년부터는 "전군이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는 오늘의 7연대가 되자"는 구호를 내걸고 '오중흡7연대칭호쟁취운동'이라는 새로운 대중운동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해방 후 북한에 정권이 수립된 이후에도 예의 '고난의 행군'이 두 번이나 재현됩니다. 한 번은 1950년대 중반, 나머지 한번은 앞서 언급한 김 주석 사후입니다. 그러고 보면 일제 때의 '고난의 행군'은 그 원조라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제2의 고난의 행군은 1956년 이른바 '8월 종파사건'으로부터 발단됩니다. 이 사건은 당시 북한 지도부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던 연안파가 소련파를 끌어들여 김 주석의 리더십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건입니다. 김 주석의 50년 집권사에서 최대 위기로 기록되는 8월 종파사건은 1958년 3월 제1차 당대표자회에서 일단락됩니다. 사건을 마무리하는데 1년 7개월의 시일이 소요됐다는 것은 그 파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케 해줍니다.

1996년 일본 도쿄에서 출간된 허담(91.5 사망) 전 외무상의 회상실기 '김정일위인상'에도 단편적이지만 제2의 고난의 행군에 얽힌 뒷얘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김 주석은 8월 종파사건의 와중에서 꼬박 닷새 밤을 지새며 고심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언을 듣고 정면 돌파를 결심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내용이 자못 흥미롭습니다.

◆ '김정일 위인상'에 실린 고난의 행군에 얽힌 뒷얘기

닷새밤을 새우시고 새날을 맞으신 날 새벽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와 함께 정원을 거니시며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시였다.

"지금 적들은 사면팔방에서 달려들고 있다. 력량을 따지면 1:5라고 말할 수 있다. 정일이가 나라를 책임졌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놈들의 도전에 박멸로 대답하겠습니다. 적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반당종파분자들을 파리를 때려잡듯이 무자비하게 박멸해 버리겠습니다."

"옳은 생각이다. 역적중의 역적인 반당종파분자들은 파리를 때려잡듯이 박멸해 버려야 한다. 이것은 내가 30년동안 혁명투쟁을 해오면서 찾은 피의 교훈이다. 나는 내가 찾은 인생의 준엄한 교훈을 정일에게 유산으로 넘겨주려고 하였는데 벌써 그것을 마음속에 혁명의 진리로 간직하였고 성격과 기질로 굳혔으니 좋은 일이다. 나는 이제 어려운 행군을 하려고 한다.

남패자로부터 북대정자에로 행군하던 고난의 행군 때보도 퍼그나 힘든 행군이다." "저도 고난의 행군대오에 서겠습니다." "정일은 이미 고난의 행군대오에 들어섰어"


이런 대화가 있은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와 리승만 괴뢰도당과 대국주의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최창익, 박창옥을 비롯한 반당종파분자들의 머리우에 철추를 내리시였다.